본문 바로가기

BKD◈우리들의 이야기

택시 기사의 황당한 이야기


▲ 영화 택시1,2,3에 등장하는 푸조406.(위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청년의 꿈 블로그 http://blog.naver.com/kimsone34/90046911112>

'저녁에 식사도 든든히 먹었겠다, 술도 한잔 했겠다' 집에 편하게 가기 위해 택시를 기다렸습니다.

찐빵을 찌어내는 듯한 날씨에 조금이라도 걷기 싫어서 바로 내 앞에 정차하는 택시에 승차하게 되었죠.


택시 승차 후 택시 내에서 알 수 없는 냄새가 나서 기사님에게 차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했더니 신호등에 신호가 걸린 틈을 타 기사님이 뒤돌아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회사 택시라 난 잘 모르겠는데요" (기사님)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회사 택시니깐 그러려니 했거든요.

근데 난 기사님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덩치는 곰만 했으며 나이는 많이 드신 듯 보였고 얼굴과 손등 주름은 엄청 많아 보였고 손톱은 손질을 안 하신 듯 지 처분해 보였습니다. 조금은 이상하다고 생각을 했죠. 요즘 경기가 힘들 시기에 투잡(낮에는 막노동 밤에는 택시)하시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난 분위기를 바꿔보기 위해 기사님에게 "요즘 운전하시느라 많이 더우시죠?"(뱅뱅이)라고 말을 건넸는데 기사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날씨가 더워서 짜증은 나지만 일을 끝내구 막걸리 한잔 하는 생각만 하면 기분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시원한 막걸리 한잔 좋죠~~~^^"

"어서 빨리 끝내고 종로로 넘어가 봐야 해요. 정재 형님이 막걸리 한잔 하자며 기다리고 있거든요."

난 아시는 형님이신가 보다 하며 대수롭지 않게 그냥 넘겨 짚고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습니다.

"그럼 오늘 술 한잔 하시려면 많이 버셔야겠네요...^^?"

"조금 벌었는데 종로 가면 정재형님이 술은 사실겁니다. 주변이 전부 정재형님 나와바리라서요. 근데 요즘은 늙어서..."

정재? 나와바리?!...내 머릿속으로 스쳐 가는 인물이 한명 있었다. 바로 정치깡패로 주목받은 후 1961년에 사형을 당한 그 사람. (♪~기사님이 말한 그 정재가 야인시대 이정재는 아니겠지~♬)
난 설마 그 사람이겠어라고 생각하고 있던 찰라...

"두환이 형님만 살아 계셨어도 정재 형님이 쪽방 신세는 안 지고 사시는 건데..."

이런!!! 기사님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 사람을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바로 동대문을 주름잡던 이정재. 난 다시 확인하고 싶어 기사님에게 물었다.

▲ 정치깡패 이정재의 실제 모습 <출처: 무제님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jho9405/90036985698>

"설마 종로 야인시대에 나온 김두환 씨(아저씨가 무서워서 씨라고 붙었다)랑 싸우고 동대문을 장학했던 이정재 씨를 말하시는 건 아니시죠?! 그분 사형당해 죽었잖아요"

"이 사람이...아직도 살아 있는 분을 죽게 만드네...일 끝나고 막걸리 먹기로 했다니깐"(버럭)

이건 뭔소릴까? 이정재가 살아 있다?! 귀신이 곡할 노릇...난 그냥 날씨가 더우셔서 그러시나? 하며 농담처럼 흘러들었다.(안 그래도 무서운데 더 무섭게 소리를 지르시는지 몰라...ㅜㅜ)

일단 아저씨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다.

"그럼 기사님이 이정재 씨(아저씨가 무서워서 계속 씨라고 붙었다...ㅠㅠ) 부하였어요?!"

"부하는 아니고 정재형님 구두 닦았어"

"구두요?"

"구두 닦으면서 정재형님 싸우는 거 다 봤거든"

"그럼 그때 기억이 생생하시겠네요?"

"대단했지...어느 누구도 정재형님을 이길 수 없었으니...정재형님을 많이 존경했는데 가까이는 가지 못하고 옆에서만 지켜봤어^^"
(근데 어느 순간부터 반말이 와갔는지 모르겠넹...^^)

난 뒷좌석에 앉았는데도 조심스럽게 안전 벨트를 착용했다. 무서웠다. 죽은 사람이 살아 있다고 하고 그 사람과 술을 마셔야 한다니...!!!

'정신 이상자 아냐? 약하셨나? 취하셨나? 요즘 케이블로 야인시대 보시나?'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나 힐끔 힐끔 기사님을 살펴 봤는데 별 이상은 없어 보이셨다.

술이 알딸딸하게 취한 나는 하루의 피곤함이 밀려오면서 스스로 잠에 취해 있었고 기사님의 말은 흐릿하게 들려왔다.

'정재형님, 조금만 기다리쇼...일 금방 끝내고 바로 갈 테니...'

이런 내용의 전화 통화를 하고 계신듯했다. 정말 기사님의 정재사랑은 어떻게 말씀을 드릴 수 없을 정도이다. 뱅뱅이는 잠들기 전에 기사님에게 연세를 물어보고 '택시 운전 그만하셔야 할 텐데...'라고 속으로 이야기했다. 기사님의 나이는 60대 후반이라고 하셨고 못 배우고 말주변도 없어서 결혼도 못하셨다고 했다.

혹시 연세가 있으셔서 치매가 아니신지 내심 걱정도 됐지만 빨리 내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

이 이야기는 제가 어제(29) 저녁 11시쯤 택시를 타고 들어오면서 실제로 기사님과 했던 이야기를 기재 한 겁니다.
사진기가 없어서 택시를 찍지 못한 것도 아쉬운데 택시 회사랑 차량번호를 적어 두려고 메모장을 꺼내는 순간 휭~~~~하고 가시는 모습이 정재형님을 만나기 위해 빨리 가시나보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 였다.

술도 깨어오고 밥을 먹었더니 잠이 슬슬 밀려온다. 잠들기 전에 기사님을 위해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기사님 이제 운전 그만하시고 좀 쉬시면서 남은 인생 주위 동료분들과 웃으시면서 행복하게 사세요.
(지.못.미)